새롭게 혹은 남겨두며, 싱어송라이터 이서영 ‘허물 벗기’ (인터뷰)

사람은 일생 동안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중 누구는 과거에 집착하고, 어떤 사람은 현재 자신의 모습만이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하며,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이 되고 싶어 하는 미래의 모습만 바라보며 살아가기도 한다. 하지만 누구든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어떤 과거는 남고, 어떤 현재는 끊임없이 변화해가는 과정을 겪게 된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무언가는 남고 변한다는 것은 두려움을 수반하기도 한다. 조급해지기도 하고 매번 아쉬움만 남기도 한다. 그런 자신을 정면에서 직시하는 것은 제법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음악은 나의 기억과 변화를 어떻게 남기고, 표현하고 있을까? 싱어송라이터 이서영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을 한번 들어보자.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싱어송라이터 겸 숲해설가로 활동하고 있고 최근에는 영상 음악에 관심이 생겨버린 이서영입니다. 얼마 전까지 숲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지금은 쉬고 있어요. 틈틈이 좋아하는 노래를 커버하고, 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려두고 있어요.

음악을 처음 접한 계기를 소개해주세요.

저는 음악을 좋아하는 엄마 밑에서 자라며 자연스럽게 좋은 노래를 많이 듣고 자랐습니다. 어릴 적 밥상에서 피아노 치는 시늉을 했다고 하는데 그 모습이 엄마한테는 꽤 인상 깊었는지 피아노 레슨을 받게 해주셨어요. 꾸준히 레슨을 받아오다가 교회에서 반주를 시작하며 코드의 세계를 알게 되었죠. 코드를 알게 된 후부터는 이것저것 조합해 보며 경우의 수를 만들어 노래가 흘러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걸 재밌어했어요. 아마 그때가 노래 만들기를 처음 시도했던 때 같습니다.

직접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고 계신데, 어쩌다 싱어송라이터의 길을 가게 되었나요?

중학생이 되었을 무렵, 좋아하던 아이돌 그룹이 직접 작사 작곡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았어요. 제겐 그 사건이 작곡의 세계로 건너가기 위한 문턱을 낮춰준 계기가 되었어요. 고등학교를 진학하며 본격적으로 실용음악과를 지망하고 입시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노래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 내가 그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마음이 동일하게 컸던 것 같아요. 늘 한계에 부딪히는 느낌이지만 그걸 돌파하기 위해 애쓰는 제 모습이 늘 좋았어요. 오래오래 저를 응원하고 싶어 열심을 다하고 있습니다.

‘노래’에 대해 각별한 의미를 가지고 계신 것 같은데, 본인에게 노래란 어떤 의미인가요?

제가 좋아하는 선생님께서 노래에 대해 설명하면서 해주신 말씀이 있는데요. 노래라는 말의 원래 모양은 ‘놀애’ 즉 '놀기 위한 도구'라고 이야기하셨어요. 이어서 '놀음'과 '놓음'을 같은 맥락에서 나온 말로 여기고, 노래란 즉, 놀기 위한, 풀려나기 위한 자유와 해방을 맛보게 해주는 수단이라고도 말씀하셨죠.

끊임없이 제게 찾아와주었던 좋은 노래들 덕분에 잊을 만하면 가슴이 뛰고, 피아노 앞에 가 앉고, 노래를 불렀어요. 그럴 때마다 신기하게도 앞서 말했던 노래의 뜻처럼 제가 해방되는 느낌을 받아요. 제게 자유를 느끼게 해주는 순간은 보통 즐거울 때, 발산할 때, 표현할 때더라고요. 자유롭고 싶어서 언제까지고 음악에게 찾아갈 것 같아요.

곡을 만드는 자신만의 과정이 어떤지도 궁금합니다.

저는 평소에 음악을 듣는 시간보다 영화를 보거나 좋아하는 책을 읽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 음악을 듣고 영감을 얻는 경우는 흔치 않았던 것 같아요. 왜냐면 좋은 음악을 들어버리면, 나도 이런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결국 좌절하게 되는 경험까지 이어지던 순간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음악 이외의 것들을 더 풍부하게 누리면서 일상을 보내요.

한 편의 영화, 혹은 한 편의 시, 식물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글, 친구와 나누는 대화가 적혀있는 일기장 속에서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은 것들을 키워드로 적어갑니다. 마인드맵을 그리다 보면 제가 담고 싶은 노랫말이 얼추 그려져요. 가사와 선율 그 어느 것에도 우위를 주지 않고 동등하게 작업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흥얼거려놓은 선율에 끼워 맞추듯 가사를 적어넣고 있으면 아, 이래서는 안 된다! 자연스럽지 않다! 하는 마음의 소리가 들리고는 해요.

그 뒤로는 먼저 투박하게 그려나간 노래를 하나씩 뜯어보며 반주를 디테일하게 만들어 갑니다. 보통 구성을 피아노와 보컬로만 염두에 두고 만드는 경우가 많아서 피아노가 많은 이야기를 할 때가 잦아요. 이후에 편성이 바뀌게 되면 그에 맞춰 수정을 하기도 합니다. 대부분 제가 만든 곡들은 피아노가 가장 전면에 있는 노래가 많네요.

노래의 뼈대 만들기만큼은 되도록 한번 시작했으면 앉은 자리에서 다 끝내려고 노력합니다. 섬세하게 터치를 더해가는 작업은 두고두고 이어지기도 해요. 그 자리에서 다 끝내지 않으면 전혀 다른 이야기처럼 느껴져서 저 스스로 그 노래를 포기하게 될 때가 많아요.

이번에 발매하는 앨범에 대해서도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앨범의 이름은 '허물 벗기' 입니다. ‘공무도하가’, ‘어깨’, ‘도망자’ 순서대로 3곡이 이어지는 앨범이에요. 저는 분리된 자아에 대한 관심이 많아요. 나 스스로 내가 낯선 때, 그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지금은 이럴 때가 누구에게나 있잖아요. 그게 지금의 저에게 미스테리입니다. 그 궁금증이 이 앨범의 도화선이 되어 주었어요.

숲해설가 공부를 하면서 곤충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었어요. 곤충들은 동물과 다르게 키가 자라거나 몸집이 커지지 않는다고 해요. 그래서 곤충에게는 꼭 허물을 벗는 과정이 필요하죠. 곤충들은 쉽게 말해서 뼈옷을 입었다고 생각하면 돼요. 그래서 어린 시절의 모습으로부터 한 단계 도약해 나가기 위해 뼈옷을 갈아입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흔히 알고 있는 허물을 벗는 과정이지요.

보통 이 과정은 밤에, 은밀하게 이뤄집니다. 장소를 물색하고 스스로 안전하다고 판단이 선 곳에서, 천적으로부터 노출될 수도 있다는 위험도 무릅쓴 채 허물을 벗습니다. 그리고 반짝반짝 빛나는 새 몸으로 삶을 다시 살아나가요. 남아있는 허물은 또 하나의 개체같이 그 자리를 지켜요. 이 앨범이 제게는 허물을 벗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수록곡 별로 만들어지는 스토리를 간단하게 소개해주신다면?

그 강을 건너지 않기를 바라는 과거의 나, 내가 그리워하는 내가 끝내 강을 건너버립니다. 나와 이별한 후 (공무도하가) 한참을 그곳에서 머물러 있습니다. 슬퍼하고 좌절하고 원망하기도 했다가 체념합니다. (어깨) 그리고 더이상 도망치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허물을 벗고 삶을 향해 나아갑니다. (도망자) 이 세 가지 노래가 순서대로 이어지며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어요.

스토리텔링을 염두에 두며 작·편곡을 하다 보니 제가 음악적으로 시도해 보지 않았던 것들을 과감하게 만나보기도 했고, 언제나 그렇듯 결심이 담겨 있기도 해서 유난히 이번 앨범에 애착이 갑니다. 쉽게 만족하던 때로부터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때로 넘어온 시기에 준비했으니 그만큼 남다르게 느껴지네요.

수록곡 중 가장 인상 깊은 곡이 어떤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모든 곡들이 제게는 모두 특별하지만 하나만 꼽자면 공무도하가 라고 말하고 싶어요. 공무도하가는 이전에 이수영 미술작가님의 전시 때 쓰이기 위해 만들어진 곡인데요. 이전의 음악을 만들던 방식과 달리 음악에 재치를 더하고 여러 도전을 섞어 보았기 때문에 더욱 애착이 가네요. 목소리로 말이 안 되는 소리를 말이 되게끔 만들어 보고 녹음해보는 작업이 재미있었어요.

제가 가늠할 수 있는 영역에서 조금 벗어나 본 모험의 노래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공무도하가는 원래 모험이나 변수를 사랑하지 않았던 제가 의외의 경험을 통해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해준 노래입니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말씀해주세요.

지금처럼 앞으로 영화도 많이 보고, 가족들이랑 맛있는 것도 나누어 먹고, 가끔 산에도 가고 음악도 만들고 그러고 싶네요. 우선 친구와 함께 뮤직비디오를 만들기로 기획했어요. 제가 이야기도 만들어야 하고 해야 할 것이 많아요. 친구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단단히 준비해서 좋은 영상물을 만들어 보고 싶어요. 저의 첫 시도라서 긴장하고 있는 중입니다. (웃음) 또, 영상 음악에 대해 조금 더 깊이 공부하며 저의 음악 세계를 다채롭고 풍성하게 만들고 싶네요.

조금 특별한 공연을 준비해 보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자신이 속한 분야가 아닌 다른 예술 분야를 탐색하고 향유하는 것을 좋아하는 여러 예술인들과 함께 작업해보고 싶어요. 제가 생각하고 있는 형태라면 공연이라기보단 전시의 형태를 띤 무언가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열심히 공부하고, 방황하며 지내볼 생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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